본문 바로가기

읽다/리터러시

[독서후기] 김용규 『생각의 시대』- 지식 폭발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방법

 
생각의 시대
철학, 예술, 과학이 피어나던 기적 같은 시기, 그때 그리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인류 문명을 만든 5가지 생각의 도구, ‘생각을 만든 생각’을 찾아가는 놀라운 탐사 다시 돌아온 생각의 시대,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사유를 가능케 할 시원적 도구의 힘! 세종도서 교양부문(2015년)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대학신입생 추천도서(2016년) ★ 중앙일보·교보문고 이달의 책(2014년 9월)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주변국에 비해 한참 뒤처졌던 그리스는 단숨에 문화 격차를 따라잡고 서양 문명의 원류로 떠오른다. 비결은 당시 그리스의 천재들이 만들어내고 활용했던 생각의 도구, 바로 은유(메타포라), 원리(아르케), 문장(로고스), 수(아리스모스), 수사(레토리케)에 있었다. 이것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들은 어떻게 작동하며, 어떻게 문명을 만들어왔는가? 이것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은? 철학, 고전학, 역사, 문학과 뇌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을 종횡무진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활용한 5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시대, 폭증하는 지식과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어떻게 얻고, 그에 합당한 새로운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 혁신적인 생각의 도구를 배우고 익히는 데에 그 길이 있다!

 

저자
김용규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20.06.25

 

때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던 2020년.

어느 한 교회에서 소독을 위해 신도들의 입에 소금물을 뿌려 한번에 50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킨 사건이 있었다.

소금물을 뿌린 교회에서는 방역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으로 행한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거짓 정보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인해 사회 혼란만 가중시켰던 사건이었다.

이렇듯 당시는 유례없는 세계적 혼란의 초기였기 때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들이 무지막지하게 퍼져 나갔다.

팬데믹만큼이나 가짜뉴스의 전파 또한 무서운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전염병만큼 급속하게 퍼져 나가면서

무엇이 사실인지 알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기는 현상들 중의 하나인데,

저자는 이러한 지식 폭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출처 pixabay

 

파피루스의 수입이 그리스 땅에 매체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자 '첫 번째 지식의 폭발'이 일어났다. 지식의 폭넓은 확산과 공유, 그로부터 일어난 융합의 결과였다. 인류 문명사에서 이런 종류의 매체 혁명은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됐을 때 다시 일어났다. 이는 과학혁명과 계몽주의가 상징하는 '두 번째 지식의 폭발'을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인터넷과 정보기기의 발달과 함께 한 번 더 맹렬하게 불붙고 있다. '세 번째 지식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아낙시만드로스와 우리가 가진 행운은 그 성격이 같다.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진 행운 말이다! (본문 256쪽)

 

저자가 말하듯 지금의 지식 폭발을 행운이 깃든 기회로 만들려면,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상황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지식이 폭증하면서, 그 수명이 짧아지고, 지식의 소재와 성격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단편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고하는 힘이 중요해지는 '생각의 시대'라는 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단순한 정보의 수집자 또는 수용자로 전락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구조적인 사유 능력을 확보하게 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사실 누구든 편하게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은 아니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양장으로 출판되어 대중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질뿐더러,

표지도 매력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서점의 후기들을 살피다 보면

추천받은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이 책은 표지를 보고 위시리스트에서 제외했었다는 내용도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조금만 읽다 보면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웅숭깊은 통찰에 빠져들게 된다.

 

출처 pixabay

 

책은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과 2장은 지식과 생각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와 사료에 대해 소개한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도 단편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역사, 신학, 철학, 과학, 심리학 등

폭넓은 분야를 넘나들며 저자의 관점으로 녹여서 전달하기 때문에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느낌은 1, 2장뿐만 아니라 책 전체를 읽는 동안 이어진다.

 

총 지면의 2/3에 달하는 분량을 3장에 할애했을 만큼 저자가 본격적으로 던지려는 메시지는 3장에 주로 담겨 있다.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 이렇게 다섯 주제가 3부의 각 장을 차지하고 있고,

저자는 이 다섯이 생각을 만드는 기둥이라고 본다.

<3부 생각을 만든 생각들>
  1장 메타포라-은유
  2장 아르케-원리
  3장 로고스-문장
  4장 아리스모스-수
  5장 레토리케-수사

 

이 다섯 가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나에게 깊게 들어왔던 내용들을 추려보았다.

 

*은유는 원관념(예: 시간)과 보조관념(예: 파발마)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원관념의 본질(예: 빠르다)을 드러내고, 비유사성을 통해 의미의 변환 내지 확장(예: 소문을 퍼트린다)을 창조해 낸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은유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150쪽)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 (161쪽)

 

*시를 읽고, 낭송하고, 외운다는 것은 단순히 감성적 취향을 고양시키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뇌 안에 은유를 창출하는 뇌신경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이다. (163쪽)

 

*관찰이 먼저다! "모든 지식은 관찰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세계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의 패턴들을 구분해 내고, 패턴들부터 원리들을 추출해 내고, 사물들이 가진 특징들에서 유사성을 이끌어내고, 행위의 모형을 창출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이것은 로버트와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함께 쓴 《생각의 탄생》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옳은 말이다. 관찰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원리 창조의 출발이다. 패턴은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반복되는 유사한 특성을 통해 파악된다. (202쪽)

 

*글은 단순히 종이 위에 쓰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좀 더 높은 수준의 사고로의 '폭발적인 도약'을 이끈다. 잭 구디와 루스 피네건 같은 현대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이 같은 주장을 '대분수령이론 great divide theory'이라 부른다. 글 읽기와 쓰기가 인지 발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는 뜻이다. 마이클 콜과 페그 그리핀 같은 심리학자들은 바로 이 같은 의미에서 소위 '문화 증폭설'을 주장했다. 내용인즉 아이들이 문자를 익히는 시기에 그들의 정신 발달에 문화적인 증폭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98쪽)

 

*문장의 팔들은 아이들의 정신이 자기 안에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대상과의 관계를 파악하게 하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 짓고, 이유와 목적을 설정하며,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게 한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언어 안에 나타나는 언제(시간), 어디서(장소), 무엇을(대상), 어떻게(방법), 왜(이유, 목적), 무엇으로(도구, 수단)와 같은 규정어 하나하나가 그들의 정신 안에 세계를 짓는 도구들이다. (317쪽)

 

*자연의 수학화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수가 하늘과 자연을 만들어낸다"라는 우주론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수를 지니고 있다"라는 인식론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요컨대 수가 우주와 인간의 정신을 이어주는 튼실한 교량인 셈이다. (335쪽)

 

*새로운 세계관이 요구하는 것은 수를 통한 자연의 정복이 아니라 수에 의한 자연과의 조화, 곧 피타고라스 스타일이다. (368쪽)

 

*초기의 수사는 너 나 할 것 없이 미사여구(더 정확히 말하자면 은유적 표현)를 사용한 '감동시키기'였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런 수사를 '문예적 수사'라 하는데, 그것이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 이후 지금까지 부단히 이어져왔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도 수사라고 하면 현란한 문학적 표현을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히피아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한 이래, 수사가 문학적 기예가 아니고 설득의 도구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비결은 수사에 논증을 끌어들인 것인데,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말은 그것이 아무리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점차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수사를 '논증적 수사' 또는 '수사적 논증'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힘은 '감동시키기'가 아니라 '확증하기'이다. (379쪽)

 

이러한 내용들은 두고두고 복기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특히 교육을 행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1. 낯선 두 단어를 연결(은유)하는 공부인 '차라의 부대주머니 훈련',

2. 자연에서 관찰한 내용을 제대로 보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연습을 위한 '자연 관찰 일기',

3. 연설문이나 문학 작품에 담긴 창작자의 사고 체계와 정신적 문법을 익히는 '암송'

 

등에 대한 내용은 학교 수업에 실제로 접목시켜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암송의 경우,

근래에는 '암기'가 낡은 교육법으로 평가받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좋은 교육 방법일 수 있다.

창의성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들을 융합하고 재구성한 결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출처 pixabay

 

중국의 사상가였던 노자는 물을 최고의 선(上善)으로 평했다.

모든 생명의 갈증을 촉촉이 적셔준다는 점에서 수선리만물水善利萬物하고,

흐르다가 다른 사물과 부딪히면 싸우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부쟁不爭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하는, 낮은 곳에 처하는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의 덕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는 표현으로 물이 가진 생명력을 은유했다.

 

두 현자가 살았던 시기는 비슷했지만 전혀 교류할 수 없었던 시대였음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일맥상통하는 커다란 지혜가 담겨 있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는 지혜에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이 담겨 있고,

저자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로 제시하는 지식의 '계통발생'과 '개체발생'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한 개체로서 인간이 습득하는 지식은 당대의 문명이 누적되어 온 결과라는 점에서 지식은 '계통발생'적이고,

각 개인이 습득하는 지식들은 본인의 고유한 경험과 사고 체계 안에서 '개체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책은 읽는 사람이 가진 경험과 관점에 따라,

폭넓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지혜를 담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

정보의 범람 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든 사람들

누구에게나 유용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는 급박한 변화를 거듭해 갈 테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자가 제시한 생각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뭉근하게 자신의 사유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좋은 나침반 같은 책을 만났다.

 

P.S.

『생각의 시대』는 고영성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안에서 추천 도서로 나와서 읽어본 책인데,

아마 『생각의 시대』에 끌린 독자라면 고영성 저자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오리라 싶네요.

해당 도서에 대한 후기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enima97.tistory.com/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