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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리터러시

[독서후기] 박제원 『학교 속 문해력 수업』- 초등교사의 입장에서 읽기 -

 
학교 속 문해력 수업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위해서도, 대학 논술을 위해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중요한 문해력은 현대사회에서 단순히 책을 읽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사진과 동영상을 텍스트로 받아들이고 매체 정보의 신뢰를 확인하는 능력까지 문해력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문해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언론에서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디지털기기가 확장되며 어렸을 때부터 텍스트를 대충 훑어 읽고 짧은 글과 영상에 익숙해 집중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특히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적 읽기와 뇌과학의 이해,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문해력을 다시금 발견해 보자.
저자
박제원
출판
EBS BOOKS
출판일
2022.08.10

 

요즘 읽은 책들의 짜임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저자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문해, 인지, 사고 등)에 대한 책을 섭렵했고,

그를 통해 얻은 지식들을 바탕으로 문해에 대한 이론을 꿰어 나간다.

그리고 본인만의 스토리를 구축한 후, 통찰이나 경험을 한 술 얹어 책으로 엮어낸다.

책을 몇 장 펼쳐본 후, 이 책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갖고 독서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이력에서부터 특이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다가 중등 사회교사로 전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회" 교사이지만,

소속 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 출강하여 "논술"을 가르친 바 있고,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을 거쳤으며,

지도 학생이 '경제논술 경시대회'에서 1등상인 대상을 차지하는 등 논술에 관한 상당한 지도 경력을 갖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책의 6장과 7장에 제시된 방법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쳤고,

대입 논술전형에서 높은 합격률을 낸 원리를 이 책에 담았다고 말한다.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문해력을 길러주기 위한 도움을 받으려고 책을 펼쳤는데

목차와 머리말을 읽은 후에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논증하는 글을 어떻게 읽어 들이고,

내 것으로 소화해서 글을 쓰는 힘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렇게 이 책의 킬링포인트는 책의 막바지에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 나갔다.

 

출처 unsplash

 

책에 담긴 글쓴이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나니,

문득 이번에 개정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떠올랐다.

2022개정 교육과정 국어과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다양한 유형의 담화, 글, 국어 자료, 작품, 복합 매체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한다.
(2)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의 의견과 감정,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협력적으로 의사소통한다.
(3) 민주시민으로서 의사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한다.
(4) 공동체의 언어문화를 탐구하고 자신의 언어생활을 성찰하고 개선한다.
(5) 다양한 사상과 정서가 반영되어 있는 국어문화를 감상하고 향유한다.

 

여러 언어 재료를 토대로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첫째로 제시하고 있다.

나 역시 미디어, 디지털 등 다양한 층위에서 리터러시를 다루더라도 가장 중요한 내용은 리터러시 자체에 있다고 본다.

우선 아이들이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고,

얻은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 틀을 키워나가도록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보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 '논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논증에 대한 자신의 생각 혹은 요령을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조직화, 즉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글을 이해할 수 없다. 글의 짜임새, 즉 구조를 이루는 주요 내용은 문제 제기, 배경 설명, 정의, 예시적 사례, 근거 혹은 전제, 혹은 결론을 내리는 이유, 가능한 반대 근거, 주장 혹은 결론을 들 수 있다. (268쪽)

*논증은 주장과 근거 또는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진 말 묶음이다. 어떤 주장을 참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로 뒷받침하여 논리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논증, 즉 논리적으로 사고하려면 글쓴이가 무엇에 대한 글을 썼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는가 등 핵심적인 정보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글쓴이가 무엇을 화제로 삼아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간에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독자가 수용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첫째, 전제가 틀림없이 옳거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상식, 개념, 진리, 통계수치, 목격자의 증언, 전문가의 의견 등 출처가 분명한 사실적 지식이거나 개념적 지식이어야 한다.
  둘째, 전제가 결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전제가 모두 옳거나 인정할 수 있더라도 결론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셋째, 결론을 뒷받침하는 전제의 종류, 수, 질 등 근거가 매우 충분해야 한다. (286~287쪽)

*대전제나 소전제 중 하나를 생략하고 논증할 때도 있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으며 '잠재적 논증'이라고 하고, 생략된 전제를 '숨은 전제'라고 부른다. 독자가 글에서 숨은 전제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숨은 전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쓴이의 논증이 '좋은 논증' 혹은 '나쁜 논증'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중략) 잠재적 논증에 숨은 전제를 보충해 주면 부당한 논증도 타당한 논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례 등을 생각해 보고, 숨은 전제를 추가할 때 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독자가 글쓴이 대신에 숨은 전제를 보충하여 글쓴이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호의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rity)'를 보여줬다고 부른다. (291~292쪽)

*좋은 논증이 갖춰야 할 규칙
- 첫째, 언어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 둘째, 전제가 옳아야 한다.
- 셋째, 결론이 전제들로부터 잘 이끌어졌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전제와 결론이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320~324쪽)

*글이 하나의 문단이라면 다음의 원리를 따라서 글을 분석해야 한다.
- 첫째, 글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므로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를 찾아내고, 대개는 이것만으로 문장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으므로 목적어 등 필수적인 문장 요소를 찾는 동시에, 관형어나 부사어 등은 논증하는 데 굳이 없어도 된다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문장 속에 절, 구, 문장이 들어 있는 긴 문장의 경우에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분해하여 주장과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
- 둘째, 하나의 문장이 있을 때 뒤 문장이 왜 따라서 나오는지를 물어야 한다. 즉, 논리적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329~330쪽)


*글이 두 개 이상의 문단이라면 다음의 원리를 따라서 글을 분석해야 한다. 문단 사이에 논리적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즉, 각 문단의 핵심 내용, 문단마다 결론인 주장,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파악한 후에 그렇게 파악된 핵심 내용 간에 논리적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논리적 관계로서 원인과 결과, 비교와 대조, 전제와 결론, 다른 의견과 반박, 문제 제기와 대안 등을 들 수 있다. (338쪽)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에 두고 논술 모의고사와 여러 대학의 기출문제를 예로 들어,

단어-단어, 문장-문장, 문단-문단 간의 관계를 톺아보면서

글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출처 pixabay

 

긴 텍스트들을 기반으로 해석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옮겨 오기는 어렵지만,

저자가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분석 과정은 어른인 나에게도 크게 도움 되었다.

논증이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좋은 수단이라는 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고,

논증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글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묻는다면 이 책을 소개해 줄 용의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차별화 포인트인 6~7장의 내용이 책 전반부에 비해 더 두터웠으면 하는 점이다.

1~5장에서도 배울만한 점은 많았지만(실제로 메모도 많이 남겼다),

사실 뇌과학, 독서교육, 문해력 전반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들이고,

저자가 가진 노하우 중 가장 크게 본받고 싶은 점은 6~7장의 논증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써내기에는 분량의 한계가 있었다는 저자의 항변이 들리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각 챕터별로 한 두 가지 텍스트를 가지고 분석한 사례만 엿볼 수 있어서

수박 겉핥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이 비판적 사고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6~7장의 내용을 깊게 파고드는 후속작을 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학령 수준별로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학생 대상의 교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출처 pixabay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아이들에게 분명 필요하지만,

(지금보다 더 정보가 주도하게 될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지금 학교에서 행해지는 교육과정과는 얼마간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교육과정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어서라기보다는

학교 안에서 비판적 사고에 대한 담론이 풍성하지 않아서 드는 착시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저자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로 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 수준의 텍스트를 비판하는 경험이

아직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이 책이 사회적으로 리터러시에 대한 고민과 공감대가 더 확산될 필요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그와 동시에 학교급간 교육과정, 성취기준들을 충분히 연계성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각 주체들이 서로 논의할 수 있을 만한 시공간적 자리가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런 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논증을 통한 비판적 사고력 함양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이를 초등교육 수준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해 봄과 동시에,

나의 비판적 사고 역시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염두하며 배워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