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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리터러시

[독서후기] 조병영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EBS 〈당신의 문해력〉이 방송된 이후 ‘문해력’과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문해력’은 공부를 잘하게 해 주는 능력, 자녀교육 필수 개념 정도로 알려져 있다. EBS 클래스e에서 〈당신의 문해력〉을 강의하며 문해력 열풍의 주축이 되었던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병영 교수는 말한다. 이제는 ‘문해력’이 아닌, ‘리터러시’를 말해야 하는 시대라고. 리터러시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인 ‘문해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글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고, 내가 보고 읽은 텍스트에 내 경험과 지식을 더해 새로운 나만의 지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기에, 리터러시는 개인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꼭 쓸 줄 알아야 하는 ‘배움의 도구’이다. 이에 더해 읽고 생각하고 나누면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기에, 리터러시는 사회적 개념이자 ‘역사적 도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류문명사의 수많은 변화와 진보가 함께 읽고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서 실현되었고, 반대로 잘못 읽고 나쁘게 써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시대적 퇴행을 겪기도 했다. 리터러시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가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어진 짧은 글을 읽고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뉴스를 재생산하고 유통하는 시대, 우리는 리터러시로 좀 더 정밀하게 세상의 맥락을 읽고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인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포용적으로 소통하는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는 우리가 제대로 ‘읽는 인간’이 되어 더 나은 삶, 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이 가득 담겨 있다.
저자
조병영
출판
쌤앤파커스
출판일
2021.11.25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는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닿을 수 있고,

미디어 자체가 갖는 파급력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맛사지다』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미디어는 한 인간의 모든 감각에 호소하며 인간을 심리적으로 마사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매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역설한 표현이다.

 

수많은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

자유를 사상의 근간으로 삼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만큼

우리는 각자가 가진 고유성과 개별성에 이끌려서 살아간다.

어떤 매체를 통해서 어떤 정보를 접하느냐 하는 문제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책에서 조병영 교수는 미디어에 대해서 자신의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기술로서의 미디어media as technologies’이다.

최근 들어 강조되는 에듀테크, 디지털 전환 등이 이 관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텍스트로서의 미디어media as text’이다.

미디어를 읽고 분석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본 측면이다.

셋째는 ‘맥락으로서의 미디어media as context’이다.

인간 삶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매개로 이해한 내용이다.

 

현재 교육계에서는 기술로서의 미디어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고 본다.

이전에 실시되던 사업과 같은 맥락의 내용임에도 '에듀테크', '디지털'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내려오는 내용이 많다.

현장에서는 사업의 목적이 '디지털 전환'에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애초에 목적으로 삼아야 했던 사업의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현실은 디지털 디바이스의 활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조병영 교수가 이야기했던

'텍스트로서의 미디어', '맥락으로서의 미디어'에 대한 관점에 관심을 키워나갈 필요를 느낀다.

 

혹시 나무에서 사는 문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나무 문어에 대한 소개 자료가 적힌 웹페이지도 운영되고 있다.

스크롤을 내리기 전에 아래 웹페이지에 접속해서 사이트를 살펴보기를 권한다.

(악성코드가 숨어 있다거나 유해한 페이지는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https://zapatopi.net/treeoctopus/

 

출처 http://www.dailytw.kr/news/articleView.html?idxno=22730

 

책에서 이 내용을 보고 처음에는 '오 흥미로운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터러시를 다룰 때 가짜뉴스는 배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꼭지고,

분명 이 책에서도 짚고 넘어갈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페이지가 거짓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실제로 나무에서 사는 문어는 없는데,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사이트다.

 

책에는 아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의 2021년 1월 24일 자 팩트 체커에 의하면, 트럼프는 임기 4년 동안 총 30,573번의 거짓 또는 왜곡된 주장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루 평균 약 21건 정도인데, 날이 갈수록 그 빈도가 늘어나고 정도가 심해지는 특징을 보였다고 합니다. (103쪽)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1943~)는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가짜 뉴스를 쏟아 내도 지지율이 낮아지지 않는 현실은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신호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110쪽)

 

트럼프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왜곡된 정보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자크 아탈리의 평가는 보면서는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좀 씁쓸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루이스 보르헤스가 상상 속에서 생각한 '바벨의 도서관' 개념, 정보 기억을 위한 메멕스 등

리터러시의 매개가 확장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고,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미국에서 생활하는 저자의 시선이 드러나는 점들도 좋았으며,

저자가 수행했던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리터러시와 개인/집단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등도 인상적이었다.

 

글의 내용뿐 아니라 구조와 형식에 대해서도 약간의 평가를 곁들여 보자면

간혹 현학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 단어들이 있었지만,

저자가 리터러시에 대해 오래 연구한 경험이 드러나고,

이를 학술적 의미와 현실 사례를 잘 엮어서 만들어 낸 점이 좋았다.

글쓴이가 선택하는 어휘나 개념의 정교성, 글을 구성하는 흐름 등도 잘 버무려져서

소화하기 좋으면서도 맛있게 요리한, 건강한 음식을 먹은 느낌이었다.

 

리터러시에 대한 리터러시를 기르기에 좋은 책이었다.

정보를 얻는 수단이 다변화되는 지금 리터러시에 대한 리터러시를 기를 필요를 느낀다.

리터러시에 대한 이해가 충만할 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도구가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

정체성과 리터러시의 관계 등과 관련 있는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