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수) 친구 H에게서 온 연락
갑작스레 친구 H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H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 K를 두고 있으며,
자녀의 학교에서 운영위원회 지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또 다른 녹색어머니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화를 받아보니 학교에서 겪은 일로 물어볼 게 있단다.
몇 차례 만나본 K는 기질이 온순한 아이였다.
K는 어려서부터 말이 느려 언어 치료를 받아왔을 만큼 발달이 더딘 편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하지 못해,
H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걱정을 해 왔던 점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H가 전화를 걸어온 이유는,
K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겪은 일과 관련해서 담임에게 받은 문자메시지 때문이었다.
H가 전해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담임에게 받은 문자메시지를 간추리자면,
K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X에게 파운딩(엎어치기)을 당했다.
그 이후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K도 X의 머리에 혹이 나도록 때렸다.
담임은 이런 경위를 알리기 위해 양측 부모에게 문자를 보냈고,
가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H는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 나서 두 가지 사항이 궁금하다고 했다.
1. 이런 일이 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가?
2. 본인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나는 H에게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H는 X가 먼저 가해 행동을 했으니, 상대측 학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폭력에 해당되는 내용인지도 궁금해 했다.
그리고 자신이 거치고 있는 생각의 흐름이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며,
고소하기 전에 변호사에게 자문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묻는다는 거다.
나는 우선 어떻게 대처하는 게 아이에게 교육적인지를 기준으로 삼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장난 치다가 치고 받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학폭위를 열어달라고 대응하면 학교가 열어주긴 할 거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만에 하나 학폭위까지 가게 되면 결국 부모들 간의 싸움으로 번질텐데,
서로가 입은 피해를 중심으로만 목소리를 키워서 갈등은 더 증폭될 것이며,
두 아이 모두 상처를 입게 될 거라고 조언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담임이 상황을 각 부모에게 알려줄 수는 있지만,
X의 학부모가 사과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은 담임에게 갑질로 받아들여 질거라고 했다.
그러면 결국 담임과의 관계마저도 망가질 거라고.
그랬더니 H는 본인도 그 부분이 걸린다고 얘기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어디까지 학교에 요구해도 되는지,
어떻게 풀어가야 맞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게다가 본인 부부가 학교에서 임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학교에 사소한 내용을 제기하더라도 학교에서 위압으로 느끼지 않을까 염려도 하고 있었다.
그러면 결국 아이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텐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본인만 가만히 있으면 학교는 잔잔한 호수 같을 거라며.
그런데 솔직히 화는 난다고.
가만히 듣고 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비슷한 일이 생기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 '학폭'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니,
아이가 친구들과 관계에서 피해를 입었다 싶으면 그 방법이 먼저 떠오르고,
가만히 있자니 속은 불편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학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H부부조차도,
학부모로서 담임과 어떻게 소통해야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지 모르고 있었다.
사실 H의 걱정은 X가 K보다 힘과 영향력의 우위를 점하고 K를 못살게 굴지는 않을지,
더 나아가 K가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돼 자존감이 훼손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염려였다.
가뜩이나 발달이 느리고 순한 아이라서 오래 전부터 걱정해 왔으니 말이다.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담임에게 대면 상담을 요청하기를 H에게 권했다.
K가 지속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 점을 놓고 담임에게 K가 자라온 역사와 함께 오늘의 일까지도 연결지어 대화해 보라고.
그리고 그 점에 대해 담임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집에서 도우면 될지 의견을 물으라고.
만약 걱정하는대로 X가 다른 친구들을 억압하는 형태로 관계를 맺어간다면 담임도 그 점에 대해 지도하고 있을 거라고.
H는 긴 통화를 마치며 고맙다고 했다.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실수할 뻔 했다며.
아마 대다수 학부모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 아닐까?
학부모들은 학교와 관계를 맺는 데 서툴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를 매개로 맺어진 특수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바와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때 더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떤 행동을 하면 '진상 학부모'로 비칠 수 있고,
어디까지가 갑질이 아닌 정당한 교육적 요청인지 알기 어렵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교와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에 대한 연수가 진행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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