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금) 첫번째 학부모회 대의원회에 참석하다
오늘도 생각나는 몇 가지 포인트들 기록.
0. 대의원회에 대한 기본사항
학부모회 대의원회는 총 12명(회장, 부회장, 감사, 각 학년 대표 6명, 폴리스 대표, 녹색 대표, 사서 대표)으로 구성된다.
회장과 부회장, 감사는 각각 자녀가 전교 회장, 6학년 부회장, 5학년 부회장이기 때문에 역할을 맡았다.
회의는 연간 총 4회 운영되며, 오늘이 첫번째 회의였다.
회장이 진행을 맡고, 부회장은 기록하며, 회의 내용을 임원들이 교감과 상의 후 피드백 내용을 전교에 공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번 회의는 오전 10시부터 다목적실에서 진행되었다.
전담교사나 행정실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이기도 해서, 11시 30분이 되기 전에 회의를 마쳐야 한다.
학교에 학부모상주실이 있긴 하지만, 그 공간은 배움터지킴이 분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었다.
학교에 유휴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부모회에는 연간 160만원 가량의 예산이 확보되어 있다.
그 중 강사료가 60만원, 학부모 연수비를 위한 비용 40만원, 나머지 프로그램 운영비가 60만원 가량 된다고 했다.
오늘 대의원회는 학부모회에서 개최할 어린이날 행사가 주요 내용이다.
첫 회의라 그런지, 구성원들은 100% 참석했다.
담당교사는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의 체험처로 인솔을 나갔기에 만나지 못했다.
1. 학부모회에는 예산과 시간이 부족하다.
회의장에는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행사장은 둥글게 앉아 회의할 수 있도록 정돈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회의 안건과 호두과자, 그리고 병에든 커피가 놓여 있었다.
먼저 도착한 현임 회장과 전임 회장이 장소를 꾸며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 현임 회장은 수수하고 소탈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동안 전임 회장이 이야기 하기를, 테이블에 놓인 호두과자는 현임 회장의 협찬이란다.
지난 학운위가 끝날 때 받았던 풍성한 간식에 비하면 오늘 놓인 다과는 소박한 느낌이었는데,
그마저도 현임 회장이 사비를 지출해서 구색을 갖췄다는 점이 첫 번째로 놀라웠다.
학부모회와 학운위가 학교에서 받는 대접의 차이는 간식을 통해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 시작 전에 학교장이 잠깐 들러서 먼저 인사를 했고,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이 누구신지는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학교장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 누구인지 간단히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회장이 간식을 협찬했음을 학교장에게 넌지시 알렸다.
우선은 회장의 숨은 노력을 드러내 주고 싶었고,
학부모회에 대한 지원을 간접적으로 요청한 셈이기도 했다.
소개가 모두 끝나고, 교장이 자리를 떴다.
곧이어 회의가 시작되고 회장은 안건 초안을 공유했다.
안건은 컬러로 출력되어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회장이 사비로 출력해 온 것이다.)
이번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대략 이런 내용을 생각했는데,
학교 예산이 부족해서 어떤 물품들은 사비로 이미 구매를 해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놀람과 안타까움을 표하자, 웃으면서 괜찮다고 여태 회장들이 다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이다.
전임 회장도 빙긋 웃으며 어색한 미소를 띄었지만,
이런 상황은 다음에 맡을 회장에게도 부담이리라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예산 사용이었다.
우리가 품목을 정해서 학부모회 담당교사에게 알려주면,
품의와 구매까지 모두 학교에서 대리하는 방식으로 예산은 집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물품은 특정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것 중에서 골라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은 저렴한 것,
학부모들의 시간이 좀 들더라도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1년 동안 진행할 사업 전체를 60만원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교생이 수백명 되는 학교였기에 어린이날 행사만 치르기에도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은 몇 백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날 행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학년별 건의사항 수렴이 끝나자 11시 30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논의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곧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1시 30분이 넘으면서 다목적실 밖을 서성이는 교직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 해야 했다.
회의가 끝나고 회장에게 학교에 예산을 더 요청할 수 있고,
주어진 예산 간에도 추경을 통해 예산을 변경할 수 있다고 알렸다.
그는 처음 듣는 새로운 사실이라고 놀랐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바는,
지금까지 담당자를 포함한 학교 측 누구도 학부모회의 예산 집행 과정에 대한 상황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적극적으로 학부모회 예산 증액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소외된 사업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학부모들은 학교 행정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학교 참여에 대해 선배 학부모들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음 대의원회에서는 정식으로 예산 확충을 건의하자고 했다.
2. 스승의 날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
기타 안건으로 나는 스승의날에 현수막 걸기를 제안했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교사와 학부모들의 심적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고,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학부모회 차원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취지였다.
참신한 문구로 현수막을 걸어서 선생님들이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그러면 학부모들의 부담도 적지 않겠냐는 생각을 덧붙였다.
내가 제시한 취지에 동의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곧이어 회장은 아이들을 시켜서 선생님들께 감사 편지를 쓰거나,
등교길에 부모님들이 나와서 선생님들께 어떤 이벤트를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반대 의견도 나왔다.
요즘은 교사들이 스승의 날에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한다는 여론도 있고,
다른 학교에서 이벤트 하는 걸 보고 학부모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 사례를 들었다며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다.
몇몇 학부모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동조하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시간의 한계로 논의는 이어지지 못했고,
나중에 카톡방에서 다시 이야기하자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3. 학부모의 참여, 그리고 성장
오늘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몇몇 이야기는 학교 참여를 통해 학부모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래는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대화의 장면이다.
저학년 학부모 A: 어린이날 행사 같은 걸 꼭 해야 하나요? 저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걸 처음 들었어요. 아이도 말해주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알림장 같은 게 없었던 것 같구요. 크게 알려지지 않을 것 같으면 차라리 예산 아껴서 더 비싼 선물을 사주면 어떨까 싶어요. 아이들도 그걸 더 좋아할 것 같구요.
고학년 학부모 B: 몇 년째 해 오고 있는데, 해보면 아이들도 좋아하더라구요. 다른 부모님들이 잘 모르시는 문제는, 여기 있는 우리가 더 많이 홍보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고학년 학부모 C: 어린이날 행사가 힘들긴 하지만, 애들 좋아하는 걸 보면 뿌듯하더라구요. 학교에 참여하다 보니 선생님들이 너무 고생하시는 걸 알 수 있더라구요. 뭐라도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학년 학부모 D: 저도 오늘 참여해 보니, 선배 학부모님들이 이렇게 뒤에서 애 쓰고 계셨던 걸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특히 임원 부모님들 너무 고생 많으세요. 다른 학부모님들한테도 많이 소문내야 겠어요.
이렇게 학부모들은 학교 참여를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에 눈을 뜨기도 한다.
성숙한 자세를 지닌 학부모들이 늘어날수록 학교와 학부모의 협력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나 역시 학교에 참여하기 전에는 학부모회 임원들의 숨은 노고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마치 불이 나기 전에는 소방관들이 시민들의 소방 안전을 책임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범죄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경찰관들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듯 말이다.
학부모회 임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의 보람을 느끼고 학교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교육이 교사들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기보다는,
보이지 않은 곳곳에서 학부모들이 개별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들만의 노력을 펴고 있으리라.
나는 여태 스스로 좋은 학부모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었지만,
학교에 참여하면서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많았다는 점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고,
어쩌면 학부모 역시 학생들처럼 성장하는 어떤 과정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회의 진행에 대해서는 미숙한 면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진행될 안건 초안이 사전에 공유되지 않아서 논의가 얕은 수준에 머물렀고,
회장이 진행을 하면서 둘 이상의 안건을 한꺼번에 제시한다거나,
건의사항과 기타 안건을 한꺼번에 수렴해서 이야기의 초점이 흐트러진다거나 하는 등.
예산에서도 알 수 있었듯 행정이나 회의 진행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학부모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자생적 노력이 필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4. 학교가 바라보는 학부모회 vs 학부모가 학교에 기대하는 점들
학부모회의 위상은 학교의 하위 구조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부모의 대표인 학부모회장도 예산 집행에서부터 학교에 온전히 종속되어 있었다.
예산 편성 권한이 없을 뿐더러 품의, 집행까지 모두 학교 측의 결재를 받게 되기에 자율권이 상당히 제약된다.
어느 정도까지 학교에 요구해도 되는지에 대해 학부모회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간식 구매에서부터 안건 출력도 개인적인 비용과 노력으로 해결하고 있을 정도이니...)
학부모회의 결정 내용이 결국은 학교와의 소통을 거쳐 피드백을 받는 형태로 반영된다.
학부모회가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학교를 지원하는 행사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이며, 무엇을 구매할 것인가,
그날 행사에는 누구 참여할 것인가를 정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심지어 학부모 대상의 연수의 주제조차 학교 측에서 제시한 내용에 따르게 되어 있다.
게다가 연수 참여자가 저조하면 필수로 몇 명 정도는 동원되어야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궁금한 점을 건의사항에 담아 학교로 올리지만,
어느 정도까지 심도있게 논의될지,
정말 반영은 될지 그 과정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이런 학부모들의 불만을 알 수 있는 건의사항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활동하는 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몇몇 학년에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으로 "걷기"가 운영된다.
운동장 1바퀴를 도는 학년도 있다는데 이 내용이 실제로 교육효과를 거두는 것은 맞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하는 이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급히 밥을 먹고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정작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공지된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바에는 왜곡이 있을 수 있고,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도 대개는 텍스트를 통해 내용을 전해받다 보니 실상이 어떤지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교육과정의 실질적 운영에 대해 학부모들은 속속들이 궁금해 하고,
더 나은 방식은 없을지 대화 나누고 싶지만 학교에서는 건의 형태로만 의견을 받고 그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답하고 있으니,
학교가 학부모 기대하는 개방성의 수준과 학교가 학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상당 수준 괴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맥락을 알고 있는 학교 관계자가 회의에 동석하여,
알려진 사실 중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바로 잡고,
이해를 구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설명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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