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사를 했다.
부동산과 관련해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제외하더라도 이사는 힘든 과정을 요한다.
같은 평형대의 아파트로 옮겼지만,
내부 구조가 사소하게 달라지면서 그에 따라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달라진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지 고민이 되었고,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를 어느 방에 둘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배치할 지도 결정해야 했다.
짝꿍과 이런저런 의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점은 거실의 기능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독서에 흥미가 붙고, 삶에서 읽는 일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제는 자라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우리도 전보다 양육으로부터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거실에 가장 크게 주고 싶었던 역할은 '성장의 공간'이었다.
함께 읽을 수 있는 공간,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러면서 함께 발전해 나가는 공간.
그리고 아무래도 방별로 기능이 분산되어 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 머무는 공간이 흩어져 있으면 점점 단절이 생기기 마련이다.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그 공간으로 가장 적합한 공간은 거실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거실에 기대했던 공간은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거실의 역할을 결정한 다음, 우리는 거실의 TV를 없애기로 합의를 봤다.
영상 매체는 노트북과 태블릿을 주로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 사용하던 노트북이 제법 큰 편이었고, 집에서 장소만 옮기며 사용할 목적으로 사용하던 녀석이 있어서 TV가 없어도 괜찮았다.
그리고 거실 한 쪽 벽면에 소파를 두고, 반대편 벽면은 책장을 놓았다.
책장에는 책들과 보드게임이 자리한다.
그리고 거실의 가운데에서 가로가 2m쯤 되는 테이블을 들였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서 읽고, 쓰고, 놀고, 밥을 먹을 먹기로 했다.
간혹 영상을 보고 싶으면 소파에 누워서 보기도 하고, 테이블에서 보기도 하고.
그렇게 TV를 없애고, 몇 달을 거실을 서재로 활용해 보니 전반적으로 삶이 만족스럽게 개선되었다.
우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책이 보인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가도 책에 잠시라도 눈이 간다.
전에는 책꽂이에 있는지도 몰랐던 책에도 존재 이유가 생긴다.
자연스레 영상 매체를 보며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줄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서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짝꿍은 소파에서 쉬고, 나는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또는 거실에서 함께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음 맞으면 밖에 함께 산책하러 나가고.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운동하는 시간이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 재우고 TV를 보던 밤 시간에도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생각에,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는 홈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맨손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간단한 운동을 일상화해서,
약속이 없는 날에는 꼭 30분씩은 땀 흘리며 건강을 가꾸는 시간을 꼭 챙긴다.
이사하면서 거실에 서재를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에서 TV를 치운 선택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가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 안에서 함께 성장하며, 단단하게 의미 있게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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