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수) 학부모가 바라본 학교의 소통 채널
이제 오롯이 학부모로서의 시선으로 학교를 바라본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교사의 입장에서 학부모와 온라인 소통 채널을 운영해 오면서는 알 수 없던,
학부모로서 바라보는 학교와의 소통 채널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올해 3학년, 1학년 아이들의 학부모인 나는 학교와의 소통을 위해 두 개의 플랫폼에 가입했다.
e알리미와 하이클래스이다.
학교의 공식적인 알림장은 e알리미로 전송된다.
그리고 큰 아이의 담임이 보내는 알림장은 e알리미로,
작은 아이의 담임이 보내는 알림장은 하이클래스를 타고 온다.
하이클래스는 근무하던 학교에서 운용을 해 봤기 때문에 익숙한 어플인데,
e알리미는 처음이라 그런지 사용법이 아직 미숙하다.
담임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질문이든 의견이든)는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혹은 하이클래스의 하이톡/하이콜 기능처럼 어플 내에 직접 소통의 기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처음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본 학부모들이 공히 겪고 있을 만한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좀 더 찾아보니 e알리미에도 소통 기능이 있긴 있는데, 큰 아이의 담임은 e톡과 e콜은 모두 사용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이클래스를 활용하는 작은 아이의 담임도 하이톡과 하이콜을 사용하지 않는다.
(카카오톡에 비하자면 e톡과 하이톡은 일반 메세지를, e콜과 하이콜은 보이스톡을 떠올리면 쉽다.)
여기까지가 현재 내가 학부모로서 처해 있는 상황이었고,
지금부터는 내가 느낀 바에 대한 서술이다.
첫째, 학교에서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벅찰 만큼 많고, 텍스트가 길다.
나는 학교와 소통하는 플랫폼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위한 영역, 전문성 신장을 위한 소식, 투자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그 경로로 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학교에 2명의 아이를 보내고 나니, 학교에서 보내오는 소식들만으로도 하루에 스마트폰이 10번 넘게 울린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안내장이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앞으로 각각 발송되어, 2건으로 수신될 때도 있다. 나야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고, 학교에서 오는 안내장에 어떤 맥락이 담겨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직업적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맞벌이 가구의 비율이 상당하고,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직장에서도 한창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할 나이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교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학부모들이 온전히 소화해 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학교에서 보내오는 안내문들은 행정 기관에서 발송되는 문서이다 보니, 텍스트는 문어체로 작성되는 데다 길이도 긴 편이다. 쇼츠나 인스타릴스처럼 영상 중심의 정보와, 짧은 시간에 전달되는 임팩트가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학교에서 보내는 장문의 텍스트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학교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학교가 처리해야 할 수많은 행정적 책임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는 중요한(!) 사항을 촘촘하게 전하고 확인받아야 할 내용이 많다는 점은 학교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은 학부모들의 문해력 문제로 치부해 왔는데, 오롯이 학부모의 시선에서 바라보자니 학교에서 오는 정보는 무척 가독성이 떨어지며, 딱딱하게 느껴진다.
둘째, SNS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에서 학부모의 입장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위에서 썼듯 우리 아이들은 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소통 채널은 둘로 운영된다.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도 인터페이스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신입생 학부모들, 모바일 접근이 취약한 계층 등)은 정보를 취하기 쉽지 않은데, 어떤 내용은 e알리미로, 또 다른 안내는 하이클래스로 전해지며, 간혹 종이로 발송되는 서류도 있다. 첫째에서 지적한 내용에다, 정보가 분산되어 전달되니 직업이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도 복잡하고 어지럽게 느껴진다. 적어도 한 학교 내에서는 일원화된 소통 수단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가장 답답한 부분은 소통 구조가 지극히 일방향성을 띤다는 점이다. 지금 대부분의 학교가 채택하고 있는 SNS 소통 구조는, 학교에서 안내장이나 알림장을 학부모에게 전송하는 방식이다. 전달되는 내용을 통해 학부모들은 정보를 얻기도 하고, 어떤 기회를 얻기도 하며, 학교의 요구(자녀 교육을 위한 협력 또는 학교의 행정 처리를 위한)를 받아 안기도 한다. 학교 중심으로 운영될 필요는 인정하지만, 학부모들도 학교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채널 자체가 없다. 온라인 상에서 학부모들이 소통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차단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가 담을 쌓고 있다고 느낀다. 필요하다면 학교로 전화를 하는 수밖에 없을테고, 궁금한 점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냥 삼키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리라. 요즘 대부분의 사회적인 소통이 양방향과 수요 주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악성 민원인들이 저지른 과오를, 평범한 다수의 학부모들이 함께 감당하라니 억울할 수밖에.
교사인 나는 '악성민원', '서이초 사건'으로 대변되는 일들을 몸소 겪어왔고,
교사들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작금의 현실이 더 아프다.
그러나 보통의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누가 학부모를 갑이라 했는가.
학교에서 학부모는 여전히 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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